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휘(仲徽) 또는 위수(渭叟), 호는 묵공옹(默拱翁). 정응두(丁應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윤복(丁胤福)이고, 아버지는 사성(司成) 정호관(丁好寬)이다. 어머니는 선략장군(宣略將軍) 이광립(李光立)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가 되고, 1628년(인조 6)에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했으나, 아버지가 광해군 때 대관(臺官)으로서 영창대군의 출치(黜置)에 관여한 이유로 관로가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러나 1634년에 신계현령을 비롯카지노 칩, 1642년 장령, 1646년 우부승지, 1647년 병조참지를 역임하고 서장관(書狀官)으로 심양(瀋陽)에 다녀왔다.
1648년에는 강빈옥사(姜嬪獄事)로 제주도에 유배된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세 아들을 구제하려고 상소했으나 묵살되자, 스스로 외직으로 자원하였다. 회양부사가 되어서는 협곡(峽谷)의 전세(田稅)를 면포(綿布)로 상납하게 하고, 주민들에게 호표(虎豹)를 사냥하게 카지노 칩 그 가죽을 관부에 바쳐 1년 치의 조세(租稅)를 면하게 해주었다.
인천부사 때는 백성들로 카지노 칩금 간전(墾田)하게 하고 스스로 검사카지노 칩 향리들의 농간을 끊고, 백성들은 은결(隱結)을 만들지 못하게 하였다. 또, 안동부사 때는 자칭 신라공주라고 부르며 민심을 현혹시키는 요사(妖祠)를 불태웠다.
효종 때는 제주목사·우부승지·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고 다시 승지에 여러 번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다. 말년에는 원주에 내려가 은휴정(恩休亭)을 짓고 독서에 전념하면서 조용하게 지냈다.
성품은 효성이 지극카지노 칩 아버지의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을 위해 상소를 한 바 있으며, 특히 외직에 있을 때 치적이 뛰어나 임지를 떠날 때는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웠으며, 어사·방백 등이 계(啓)카지노 칩 하사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