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백미(伯美). 정랑 홍수제(洪受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홍우전(洪禹傳)이고, 아버지는 판서 홍계희(洪啓禧)이며, 어머니는 김취로(金取魯)의 딸이다.
1752년(영조 2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이 되고, 1759년 호남지방의 부정한 서리 색출의 임무를 띠고 전라도도사에 특제(特除)되었으며, 같은 해 다시 교동농형순심어사(喬桐農形巡審御史)로 파견되었다.
이듬해 헌납이 되었고, 그뒤 부응교·사간·승지를 거쳐 1764년 카지노 쪽박걸간이 되었다. 1767년 이조참의가 된 뒤 2년 동안에 세 차례에 걸쳐 이조참의와 승지를 번갈아가며 역임하다가 1769년 형조참판에 오르고, 카지노 쪽박걸헌을 거쳐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가 되었으며, 1773년 카지노 쪽박걸성이 되었다.
이듬해 이조참판이 되고, 이어 평안도관찰사와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당색이 노론벽파(老論僻派)였던 그는 1776년 홍인한(洪麟漢)·정후겸(鄭厚謙) 등과 더불어 정조의 즉위를 반대하였다가 이듬해 정조가 즉위하자 파직당하고 북도(北道)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추자도로 이배되었다.
이 때 아들 홍상간(洪相簡)과 두 아우 홍술해(洪述海)·홍찬해(洪纘海)가 대역죄로 처형됨에 그도 또한 주살되었다. 첫째 아우 홍경해(洪景海)와 함께 4형제가 차례로 등과하여 영조 치하에서 현직(顯職)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