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카지노 칩피로인의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본학자는 2~3만, 한국학자는 10만에서 40만까지 추정하고 있다. 카지노 칩피로인의 피랍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다. 첫째, 전투 중에 잡혀서 끌려간 경우, 둘째, 전투지역에서 군량수공 · 축성 · 잡역 등의 사역을 위한 경우, 셋째, 일본내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한 경우, 넷째, 도공 등 기술자의 납치, 다섯째, 여자와 동자(童子) 중에 미모와 재능이 있는 경우, 여섯째, 전쟁 중에 일본인에게 협력한 경우, 일곱째, 노예매매를 목적으로 한 경우 등 다양하다.
일본에 끌려간 이후의 거주지역은 조선침략에 참가했던 다이묘〔大名〕들의 출신지역과 구주지역이 제일 많았고, 쇄환(刷還)된 피로인들은 카지노 칩의 사행로 주변에 많이 살았다. 피로인의 쇄환은 1604년 이전에는 강화를 요청하는대마도사절에 의해 주도되었고, 그 이후에는 탐적사(探敵使),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통신사(通信使)등 카지노 칩단에 의해 주도되었다. 쇄환된 피로인은 6천 명을 넘지 않는데, 대마도사절에 의해 768명, 탐적사 및 회답겸쇄환사에 의해 4,885명, 통신사에 의해서는 14명이 돌아왔다.
쇄환 인원이 적은 이유는 일본 측의 비협조적인 태도, 귀국을 원치 않는 경우, 조선 정부의 피로인 정책부재, 피로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소외 등이었다. 카지노 칩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왔다는 자체가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절의를 강조했던 가치관에서 카지노 칩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또한 양반 중심의 신분제사회에 쇄환된 평민이나 천민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 점에서 조선왕조의 피로인 쇄환정책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