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 출신. 강도근은 농사꾼 아버지인 강원중과 어머니 이판녀 사이에서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에는 음악가들이 많았는데, 1971년 중요무형탠 카지노재(현, 국가무형유산) 대금산조 보유자 강백천(1898∼1982)이 그의 사촌형이고, 판소리와 창극으로 이름을 날렸던 강산홍과 가야금의 명인 강정열은 당질이며, 가야금산조로 남원과 진주에서 활동했던 강순영 또한 그와 사촌간이다.
17세 되던 해에 동편제 판탠 카지노 명창 김정문 문하에서 탠 카지노를 배운 강도근은 흥보가 중 ‘제비 후리는 대목’이 특기이다. 20세 때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서 당대 최고 명창의 한사람인 송만갑 선생에게 판탠 카지노 다섯마당을 두루 배웠고, 25세 때에 구례로 가서 박봉술의 형 박봉채(朴奉彩)에게 판탠 카지노를 지도받았다. 지리산 쌍계사 일대에서 7년여 동안 혼자 공부한 후 하동으로 유성준을 찾아가 판탠 카지노 수궁가를 배웠다.
해방을 전후해서 동일창극단 · 조선창극단 · 호남창극단 등을 전전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목포 · 이리 · 여수 · 순천 등지의 국악원에서 창악 강사를 지냈다. 1973년 이후 남원국악원을 창립하여 강사를 지냈고, 틈만 나면 선유폭포 등 지리산 등지를 다니며 연습을 한 노력파였다.
조선시대 명창으로 추앙되던 송만갑의 판탠 카지노 전통을 이어받아 동편제 탠 카지노를 고수해 오던 그는 환갑을 넘겨 60대 중반에서야 판탠 카지노계에 이름을 내기 시작한 은둔의 예술인이기도 했다.
그는 돈이나 명예에 초연한 고집스러운 탠 카지노꾼으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농사꾼임을 자처하며 고향 남원에서 농사를 지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강도근 후계자 양성소를 설립, 동편제 탠 카지노의 맥을 이어온 판탠 카지노 동편제의 마지막 대가이다. 안숙선(국립창극단장)은 초기에 그가 길러낸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1953년 부산 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 1981년 탠 카지노국악협회 국악공로상, 1985년 남원시민의 장 문화장, 1986년 KBS국악대상, 1992년 동리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1988년 중요무형탠 카지노재인 판소리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모습으로 약간 쉰 듯하면서도 청청한 수리성과 가늘고 단단한 상청을 이루는 성음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