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및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바가 없다.
『미륵불광사사적』(1918)에 의하면 526년(성왕 4년) 카지노 파칭코 율을 구하기 위해 중인도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에 이르러 5년 동안 율부(律部)를 공부하고 범승(梵僧) 배달다삼장(倍達多三藏)과 더불어 범본 아담장(阿曇藏)과 오부율문(五部律文)을 가지고 귀국하였다고 한다. 526년이 카지노 파칭코 인도로 떠난 연대인지 아니면카지노 파칭코로 귀국한 연대인지 확실하지 않다. 출국 연대와 귀국 연대 가운데 한 연대만을 쓴다면 귀국한 연대를 쓰고 그동안의 행적을 적는 것이 일반적인 것을 고려할 때, 카지노 파칭코은 521년(무령왕 21) 인도에 가서 526년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카지노 파칭코성왕은 우보(羽葆)와 고취(鼓吹)로 교외까지 나가 카지노 파칭코을 맞이하여 흥륜사에 머물게 하였다. 국내의 명승 28명을 불러들여 카지노 파칭코법사와 함께 『율부(律部)』 72권을 번역하게 하였다. 또담욱(曇旭)과 혜인(惠仁)은 『신율(新律)』 36권을 지었다. 왕은 비담(毘曇)과 신율(新律)에 서문을 써서 태요전(台耀殿)에 보관하였다. 장차 판각하여 널리 펴려고 했으나 (성왕이) 죽어 겨를이 없어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카지노 파칭코 가져 온 아담장은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으로 논장(論藏)의 뜻이다. 논장은 경율론 삼장 가운데 하나로 경에 대한 이론서 또는 주석서를 말한다. 오부율문은 당시 대표적인 5부파의 율을 말한다. 한역된 5부율은 『십송율』,『사분율』, 『마하승기율』, 『오분률』, 『근본유부율』을 말하지만 명칭에 대해서는 일정치가 않다. 5부의 율문을 번역하여 72권의 율부를 만들었다면 5부의 전체 율에 대한 번역은 아니고 간추린 번역으로 보이며, 『신율』 36권은 『율부』 72권에 대한 주석서로 생각된다. 겸익이 머물렀다는 카지노 파칭코의 흥륜사는 『미륵불광사사적』에만 보이는 절이다. 신라에도 비슷한 시기에 창건된 흥륜사란 절이 있다. 흥륜사의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겸익이 떠나기 전 무령왕 때 있었다는 설과 겸익이 귀국한 이후 성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다.
겸익이 인도에 가서 산스크리트어로 된 범본 율장을 가져와서 번역까지 하고 판각을 시도했다고 하는 것은 백제불교뿐만 아니라 카지노 파칭코불교, 더 나아가 동아시아 불교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겸익에 관한 기록이 1918년 편찬된이능화의 카지노 뽀찌C870;카지노에 처음 보인다는 점에서 이 기록의 신빙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632년 한 승려가 조부를 구타하자 천황이 모든 승려를 신문하고자 하였다. 이때 일본에 건너간 카지노 파칭코의 승려관륵(觀勒)이 일본 천황에게승관을 설치하자고 제안하면서 한 말이 있다. “중국에 불교가 전한 지 300년이 지나 카지노 파칭코에 불교가 전해졌고 지금(632)으로부터 100년밖에 되지 않았다.” 서기 65년에 중국에 불교가 전해졌고, 300년이 지나 384년에 카지노 파칭코에 불교가 전해졌으므로, 당시의 지금(632)으로부터 250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때 일본에서는 이 기록에 근거해 카지노 파칭코의 불교 수용을 532년(632~100) 전후로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관륵의 기록은 카지노 파칭코의 불교 수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카지노 파칭코의 율의 수용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532년을 전후하여 카지노 파칭코에 율의 정비가 있었고, 그 시기는 겸익의 활동 시기와 겹친다. 일본 천황은 관륵의 건의를 받아들여 일본에 승관을 두었고 초대 승정에 관륵을 임명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의 계율은 겸익이 다져놓은 카지노 파칭코 계율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카지노 파칭코에율종을 전한 대표적인 승려로 카지노 파칭코 율종의 비조라 불린다. 인도의 범본 율장을 가져와 번역한 『율부7』 72권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담욱과 혜인이 저술한 『신율』 36권의 작업도 같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