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중용≫·≪논어≫·≪맹자≫ 등 사서(四書)를 비롯한 ≪소학≫·≪효경≫ 등의 경서 국역본을 찍어내는 데 이용되었던 한자 및 한글활자이다.
이 경서의 국역본은 1588년(선조 21)부터 1590년 사이에 인출(印出:인쇄하여 펴냄.)되었는데, 그 인출에 사용된 글자가 언제, 어디서, 누구의 글씨를 바탕으로 주조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종래 이를 경진자(庚辰字)·방을해자(倣乙亥字)·한호자(韓濩字) 등으로 다양하게 불러왔지만, 그 모두가 정확한 고증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
그 중 경진자는 재주갑인자(再鑄甲寅字)와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동일한 활자 명칭이 내부(內府)에서 내려준 것을 비롯하여 평양에서 만들어 온 것,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을해자와 함께 ≪무경칠서 武經七書≫를 찍는 데 사용한 것 등이 있어 복잡하다.
글자체는 을해자와 비슷하나 그보다 자양(字樣)이 균정하고 글자획이 예리하며 훨씬 예쁘다. 그런 까닭에 한 때 방을해자라 일컫기도 하였다. 한호자라고 명칭한 것은 당시 석봉(石峯) 한호의 글씨체가 유행하였기 때문에 선입견을 갖고 일컬은 듯하다.
한호 글씨의 <화담서선생신도비명병서 花潭徐先生神道碑銘並序>를 비롯한 그의 진적(眞蹟:친필)과 비교하여 보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활자는 오로지 경서의 국역본에만 보이고 사용되고 다른 주제 분야의 인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음이 그 특징이다. 경서 국역본의 인출에 사용된 뒤 임진왜란으로 없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