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신천 출생.
숭실중학교를 마치고 도미하여 목사안수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순회부흥목사로 일하다가 1921년부터 평양 남산현교회, 충청남도 홍성교회, 해주교회, 서울 만리현교회 등의 담임목사로 활동하였고, 1946년부터는 서울 북아현교회에서 시무하였다.
광복 직후 감리교회가 민족항일기에 교권을 장악했던 부흥파(復興派)와 탄압을 받던 재건파(再建派)로 양분되어 지도력의 분열을 보이자 통합의 노력이 계속되어, 1949년 4월 합동총회에서 제9대 감독으로 선출되어 감리교의 단합에 공헌하였다.
1년 뒤 6·25사변으로 교단본부가 공산군에 점령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교단사무를 수행하다가 1950년 8월 기독교지도자 납치 및 사살령에 의해 공산군에게 피납된 이후 생사를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