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레코드는 자사 레코드 홍보를 위해 1929년 12월 콜럼비아 음악 대회를 열어 성황을 이룬 뒤 콜롬비아 전속 가수 중심으로 ‘유행가의 밤’, ‘대 연주회’ 등 부정기적인 공연을 진행하였다. 콜럼비아는 빅터, 오케 레코드사에 비해 전속 가수가 부족하였기에 쇼단과 같은 공연 형태는 1930년대에 나타나지 않는다.
1940년설의식이 예술 라바 카지노 보존 · 보급 향상과 기업화를 목표로 한 조선예흥사를 설립하고 악극단이 없었던 콜롬비아 레코드사의 명의를 차용하여 그해 10월 콜롬비아악극단을 만들었다. 1회 상연물은 「콩쥐팥쥐」로 신극 운동을 경험한서항석이 대본을 희곡처럼 기승전결에 맞추어 구성하였고, 명성합창단을 운영하던안기영이 작곡을 담당하면서 성악가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1941년 11월 우리 고유의 계면조 중심음인 라미라를 서양 음계로 적은 나미라라바 카지노으로 개칭하고 유사한 작품을 만들었다.
안기영이 작곡을 맡아 진행되었던 「콩쥐팥쥐」, 「견우직녀」는 주요 레퍼토리였고, 나미라라바 카지노으로 개칭한 후에는 「은하수」를 만들어 순회공연에서 선보였다. 초기에는 오페레타 가극을 지향했고 성악 전공자와 음악 학교 출신이 단원에 포함되었다. 1942년 4월, 일본 동경 공연을 진행하였으며, 조선연예협회 위문대에 포함되어 전국을 순회공연하였다. 그러나 흥행 실패로 재정이 악화되었다. 기획을 최무성이 대표를 겸하다 1943년 사업가 김윤주에게 경영권이 넘어가고, 최일이 기획과 운영을 맡았다. 작가는 서항석에서이부풍으로, 작곡가는 안기영에서김용환, 송희선 등으로 변화되면서 가요 위주의 시대극 방식을 수용한 「아리랑」, 「오동나무」, 「뻐꾹새」, 「북두칠성」 등이 제작되었다.
나미라라바 카지노은 광복 이후 지방 공연 위주로 공연하였으며, 대규모 무대가 인기를 끌지 못하자 타극단과 합동 공연 등으로 유지하였다. 1946년 기획자와 배우의 불화로 태양라바 카지노이 창단되었고, 대표 김윤주가 사망한 이후 라바 카지노이 해체되면서 단원들은 타라바 카지노으로 흩어졌다. 주요 참여자는 안기영, 김흥산, 송진혁 · 윤부길 · 박옥초 · 임천수 · 계수남 ·전옥 · 장동휘· 김용환 · 박용구 등이다.
나미라라바 카지노은 고전 설화에서 작품 소재를 선택하여 소재 범위를 확대시켰고, 오페라와 가요 방식을 도입하였다.반도라바 카지노과 더불어 오랜 기간 단체를 유지하여 악극의 주요 참여자와 악극의 변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