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백문집(晩柏文集)』은 조선 말기의 유학자 홍이우의 문집이다. 족제(族弟)인 홍이호의 문집 『송서유고(松墅遺稿)』가 합철되어 있다. 1897년(고종 34)에 간행되었다. 8권 2책으로, 시·서·잡저 등, 스승 홍직필, 동문 전우 등의 성리학자들과 교류하며 지은 시, 성리학의 논변을 주고받은 서, 자신의 사상을 서술한 잡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재 전우를 중심으로 하는 구한말 성리학자 집단의 사상적 지향과 교유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인 홍이우(洪理禹, 18151879)는 본관은 남양(南陽), 자(字)는 문표(文杓), 호(號)는 만백(晩柏)이다. 홍일영(洪一泳)의 아들이다.1852) ·숙재(肅齋) 조병덕(趙秉悳, 18001870) · 카지노 입플C784;카지노 입플D5CC;카지노의 제자이다.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주자학(朱子學)과 인격 수양, 제자 교육에 매진했다.
『만백문집(晩柏文集)』에 합철되어 있는 『송서유고(松墅遺稿)』의 저자는 홍이호(洪理鎬, 18201866)이다. 동문(同門)인카지노 파칭코C8041922)가 지은 홍이우의 행장(行狀) 「만백당홍공행장(晩柏堂洪公行狀)」에는 홍이호가 홍이우의 동생〔弟〕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족제(族弟)이다. 홍이호는 자가 자경(子京), 호가 송서(松墅)이다. 홍하권(洪夏權)의 아들이다. 홍이우에게 수학했고, 이후에 홍직필 · 조병덕 · 임헌회의 제자가 되었다. 홍이우와 마찬가지로 재야에서 학문에 매진했다.
문집을 편찬한 홍주후(洪疇厚)는 홍이우의 조카이고, 이력은 미상이다.
홍건(洪楗, 1838~1902)의 발문(跋文)에 의하면, 여러 선비와 벗들이 교열(校閱)했던 홍이우와 홍이호의 문집 원고를 홍주우가 『만백문집』으로 간행했다고 한다. 홍주우가 홍건을 찾아와 발문을 부탁한 시기가 “숭정오정유(崇禎五丁酉)”, 즉 1897년(고종 34, 광무 1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때에 문집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만백문집』은 8권 2책, 11행 22자로 되어 있는 상하내향2엽화문어미(上下內向2葉花紋魚尾)의 목활자본이다. 권두에김준영(金駿榮, 1842~1907)의 서문, 권말에 홍건(洪楗)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 시 11수, 권2~4에 서(書) 66편, 권5에 잡저 1편, 권6·7에 잡록(雜錄) 9편, 서(序) 4편, 기(記) 2편, 제문 5편, 애사 1편, 행장 2편, 권8에 어록(語錄)과 부록으로 집촉록(執燭錄) · 행장 · 묘갈명 · 제문 · 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만백문집』에 이어서 저자의 족제(族弟)인 이호(理鎬)의 『송서유고(松墅遺稿)』가 합본되어 있다.
서(書)는 스승 홍직필(洪直弼) · 조병덕(趙秉悳) · 임헌회(任憲晦)와 당시 석학들인신응조(申應朝)· 박원길(朴元吉) · 전우(田愚) 등과 주고받은 서한으로, 경전(經典) 및 성리학(性理學)에 관한 논술이 많다.
잡저의 「만록(漫錄)」은 체계 없이 붓 가는 대로 쓴 것인데, 주로 경전(經典)의 요지를 인용해 서술하였다. 저자는 명덕(明德)의 본체가 사람과 짐승이 같으나, 명덕을 함양하는 편(偏) · 전(全) 관계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도표와 아울러 설명하였다.
잡록의 「양반설(兩班說)」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양반의 명칭을 현인(賢人)을 위주로 하지 않고 지체가 높은 귀(貴)를 위주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였다. 「풍수설(風水說)」에서는, 묘지를 택해 죽은 부모의 장사(葬事)를 지내는 목적이 가문을 보전하고 집안을 올바르게 하는 것〔保族宜家〕이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풍수설을 전적으로 믿고 무례하고 망령되게 행동하면, 설령 길지(吉地)를 얻는다 해도 도리어 해를 받게 되니 사욕을 이겨 내고 선의를 따를 것을 강조하였다. 그밖에 『송서유고』 가운데 잡저의 「변실욕허욕설(辨實欲虛欲說)」 · 「논천지인물(論天地人物)」 등은 심성철학(心性哲學)을 이해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저자 홍이우 · 홍이호를 비롯하여 문집의 서문을 작성한 김준영에 이르기까지, 문집에 언급된 인물들과 문집의 편찬에 관여한 인물들은 전우(田愚)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은 구한말 유학자 집단을 이룬다. 전우가 홍이후에 대해 평가했듯이, 『만백문집』과 『송서유고』의 글들은 스스로의 인격 수양을 지향하고 실질에 힘쓰는〔爲己務實〕 재야 학자의 학문관과 그 기반이 되는 주자학 연구의 실상을 보여 준다.
『만백문집』은 조선 말기 성리학자의 사상적 지향과 교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