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년(충렬왕 27)권부(權溥)등이 주관한 과거에이제현(李齊賢)· 박원계(朴元桂)등과 함께 합격하였고, 이듬해에 전시(殿試)에 급제하였다. 처음에는 석주(碩州: 현, 황해도 연안군), 보성(寶城: 현, 전라남도 보성군), 강화(江華: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등의 지방관을 역임하였고, 서해도(西海道)·양광도(楊廣道)의안렴사(按廉使)가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을 쌓았으며, 청렴하고 공평하다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1323년(충숙왕 10)에 사헌장령(司憲掌令)으로 있을 때 탄핵되었다가 사면을 받아 복직된 일이 있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1332년(충숙왕 복위 1)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이르렀다.
이 해에충숙왕(忠肅王)은 원(元)나라에 있으면서,충혜왕(忠惠王)의 폐행(嬖幸)인윤석(尹碩)· 손기(孫琦)등을 처벌하고자 민상정(閔祥正)과 조염휘(趙炎輝)·장백상(蔣伯祥) 등을 보내어 이들을 국문하게 하였다. 피고들이 원나라에 원통함을 호소하자 원나라에서 객성태사(客省太史) 도치(都赤)를 파견카지노사이트 다시 심문한 후 도리어 장백상 등을 처벌하였다. 그러나 민상정은 뇌물을 받은 일에 연루되지 않았으므로 감찰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이후 충숙왕 복위 연간에 관직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으며, 1336년(충숙왕 복위 5)에는 연호 개정을 축하하는 사절로 원나라에 파견되었다. 또한 인사 행정을 총괄하였는데, 관직을 줄이고 옛 제도를 복구하는 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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