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순성기」는최남선이 『소년』1909년 8월부터 10월까지 상(上) · 중(中) · 하(下) 3회에 걸쳐 N.S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다. 1909년 5월 1일 반나절 동안 공육(公六) 최남선이신문관영업부 직원인 R군과 혜화동 동소문 밖으로 나가 성 북쪽을 반 바퀴 돌아 서대문으로 들어오는 여정을 기록했다.신문관을 출발하여 구계동(勾溪洞) 계곡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성곽쪽을 찾아간 상편과 중편의 내용은 비교적 소상한 데 비해,경복궁북편 백악산정(白岳山頂)에서 시작된 하편은 내용이 ‘이하 생략’되고 해진 후 신문관에 도착한 것으로 끝맺는다.
‘나’(공육 최남선)은 봄에 꽃구경 못한 것을 아쉬워하다가 신문관 직원들에게 대단치 않은 소풍을 제안하고 비웃음을 샀다. 유일한 지원자인 R군과 둘이 그리 유명하지 않은 구계동(勾溪洞) 계곡을 찾아 폭포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은 정도의 작은 물줄기 아래에서 면포(麵包, 빵)와 잼을 먹었다. 이후 성곽쪽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작은 모래벌판을 사하라 사막처럼 기진맥진 건너던 일 등을 경쾌한 필치로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을 보며 겨울에 물이 얼 것을 걱정하고, 산정(山頂)에서 내려다보이는 한양의 풍수지리와 시세(時勢)를 우려하는, 작가의 우국적인 면모도 보인다. 멀리 보이는 성곽을 향해 편한 길로 에둘러 가는 것보다 무조건 직진하며 걷던 것을 ‘소년 정신’의 발휘로 자부한다든지, 기진맥진해서 소풍을 포기하려다가 뜻밖에 목표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고 모든 일에 “조금만 더” 노력해야 한다는 묘리(妙理)를 깨닫는 것처럼, 독자를 향한 계몽적 교훈도 담고 있다.
「반순성기」는 명승고적을 둘러보는 여행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소풍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 전통적 유기(遊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평범한 경험을 진솔하고 독창적인 감상으로 풀어낸 점, 근대적이고 참신한 문체를 사용한 점에서 근대적 문체 및 수필 문학을 개쳑했다고 평가된다.『남화경』(南華經)과 『걸리버여행기』를 함께 인유하고, 빵과 잼을 먹으며 7언 절구를 읊는 등 전통과 서구 카지노리거가 혼재하는 근대 초기의 카지노리거적 풍경과 글쓰기를 잘 보여준다.
최남선은 카지노리거 최초의 근대잡지 『소년』에서 서양의 근대적 지리 지식을 소개하는 한편, 주체의 독자적 경험에 기초한 기행문 형식의 글쓰기들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반순성기」는 후자 중에서도 경험의 주관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