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부터 실시된 수덕사 대웅전 해체 수리 공사 중 발견된 것이다. 실물은 6·25동란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현재는 당시 임천(林泉)이 그린 모사도(模寫圖)의 일부만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벽화는 대웅전 내부 네 벽의 고주중방(高柱中枋) 윗벽과 창방(昌枋) 위의 포벽(包壁) 등의 공간에 그려진 것으로 모두 40점이 모사되었다.
이들은 벽면의 중앙에 그려진 예배도 등이 아니고 건물의 결구 사이에 생긴 작은 공간을 온라인카지노추천한 장엄용 벽화들이다. 주로 소불(小佛)·주악비천(奏樂飛天)·공양화(供養花)·나한(羅漢)·극락조(極樂鳥) 등이 내용을 이루고 있다.
황토칠로 마감한 벽면에 그려진 벽화는 박락이 심하여 완전히 알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필치나 양식 등은 대체로 알 수 있다. 이 중 주악비천도는 장구를 치거나 피리를 불며 날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풍만한 얼굴, 이목구비와 손의 섬세한 묘사, 유연한 자태 그리고 굴곡이 심한 곡선으로 묘사된 펄럭이는 천의(天衣)의 모습 등이 우아하면서도 경쾌하여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동서 벽면의 고주중방 윗벽에 그려진 공양화 그림은 도자기로 생각되는 수반에 백련(白蓮)·홍련(紅蓮)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야생초를 풍성히 꽂은 모습이다. 활짝 핀 꽃송이와 풀들이 반원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모두 사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채색은 모사 당시에는 많이 퇴색되어 원래의 상태는 거의 알 수 없다.
이 벽화들은 수리 시 발견된 묵서명 ‘至大元年戊申四月十七日立柱(지대원년무신4월17일입주)’에 의하여 1308년(층렬왕 34)에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 외에는 고려시대의 벽화가 현존하지 않는 현재로서는 모사도이긴 하지만 당시 사원 벽화의 양상을 단편적으로나마 알려 준다. 섬세한 구성과 정교한 묘사, 능란한 필치 등 고려시대 사원 벽화의 우수한 양식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