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의 국문 필사본 소설집이다.김동욱(金東旭)교수가 소장하고 있었는데, 현재는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필사기에 ‘세재기묘삼월질세본칠십세서(歲在己卯三月姪世本七十歲書)’라는 기록이 있는데, 기묘년은 1879년으로 추정된다. 원작인 한문본 전기소설을 국문으로 레고카지노하되, 고유명사에는 한자를 병기하였으며, 어려운 단어에는 작은 글씨로 주석을 달기도 하였다.
「고압아」·「배침」·「홍선」의 원작인 「무쌍전」·「배심」·「홍선전」은 모두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실려 있는 소설이다. 『태평광기』는 송나라의 이방(李昉) 등이 편찬한 6,900여 종의 이야기가 수록된 책이다. 조선 세조 때에는성임(成任)에 의레고카지노 143항에 걸쳐 843종의 이야기가 선별된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 50권이 1462년(세조 8) 4월에 초간되었고 1492년에 중간되었다. 여기에 다른 여러 서적에서 모은 이야기 30권을 합친카지노 꽁돈D0DC;카지노80권이 간행되기도 하였다. 한편 『태평광기』의 국문 레고카지노본인 『태평광기언해』는 김일근 소장본 4권, 연세대학교 소장본 1권, 낙선재본 9권이 전하는데, 『전기』에 실린 세 작품은 이 언해본들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작품들이다. 레고카지노의 저본에 대하여 기존에는 『태평광기』 수록본의 레고카지노으로 보았으나, 근래에는 조선시대에 간행한 『산보문원사귤(刪補文苑楂橘)』을 저본으로 삼고 기타 서적을 참고하여 레고카지노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고압아」는 『태평광기』 권486에 수록되어 있는 「무쌍전」의 레고카지노본으로,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당나라 건중(建中) 때에 유진(劉震)의 딸 무쌍(無雙)은 이종사촌인 왕선객(王仙客)과 혼인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주자(朱泚)의 난(亂)에 연루되어 유진의 가족은 모두 죽고 무쌍은 궁내의 액정(掖庭)에 들어갔다. 왕선객이 어렵게 무쌍과 연락이 되어 그 편지를 가지고 부평(富平)에 가 고압아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압아는 모산(茅山)의 도사를 찾아가 영약을 구해 온 다음, 시비 채빈(采蘋)을 꾸며 궁중으로 들여보내 무쌍이 역당(逆黨)이라 하여 영을 내려 사약을 받게 하였다. 그런 다음 무쌍의 시신을 빼내어 영약으로 무쌍을 살린 뒤, 고압아 자신의 목숨을 끊어 비밀이 지켜지도록 하였다.
「배침」은 『태평광기』 권17에 수록되어 있는 「배심」의 레고카지노본으로,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수나라 양제(煬帝) 대업(大業) 연간에 배심·왕경백(王敬伯)·양방(梁芳)이 방외의 벗이 되어 백록산(白鹿山)에 들어가 10여 년 동안 장생불사의 도를 구하였는데, 양방은 죽고 왕경백은 속세로 내려갔다. 왕경백은 속세에서 부귀하여 대리평사(大理評事)가 되어 회남(淮南) 땅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뱃길에서 어부 차림의 배심을 만났다. 왕경백이 재물로 도울 뜻을 이야기하나 배심은 거절하고 청원교(靑園橋) 동쪽 앵두 동산 북편에 자기 집이 있으니 찾아오라고 하였다. 왕경백은 10여 일 후 공무를 마치고 그곳을 찾았다. 신비한 선경에서 잔치를 벌이면서 배심이 소황두(小黃頭)를 시켜 세속의 여자로서 왕경백에게 적합한 여자를 찾아오게 하는데 바로 경백의 부인 조씨(趙氏)였다. 조씨가 평소 잘 타는 대모쟁(玳瑁箏)으로 선기(仙妓)와 함께 연주하던 중 경백은 붉은 오얏을 부인에게 던져 주었고 부인은 신표로 삼기 위하여 붉은 오얏을 띠에 매어 두었다. 잔치가 끝나자 소황두를 시켜 조씨를 돌려보내고 왕경백도 배심과 헤어졌다. 며칠 후 경백이 그곳을 다시 찾아보았으나 풀만 무성할 뿐이었다. 왕경백이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부인 조씨가 띠에 매어 온 붉은 오얏을 문제 삼아 꾸짖었는데, 왕경백이 전후의 일을 일러 주었다.
「홍선」은 『태평광기』 권195에 수록되어 있는 「홍선전」의 레고카지노본으로,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홍선은 당나라 때 노주(潞州) 절도사 설숭(薛嵩) 집안의 여종으로 여협사(女俠士)였다. 설숭과 위박(魏博) 절도사 전승사(田承嗣)와는 인척간이었는데, 전승사는 욕심을 품고 몰래 군사를 길러 노주를 치려고 계획하였다. 이를 안 설숭이 깊이 근심하자 홍선이 근심을 덜어드리겠다고 하고 신력을 발휘하여 전승사의 막사로 가 갑사(甲士) 3백 명의 호위를 뚫고 침전(寢殿)에 있는 금합자(金盒子)를 훔쳐서 돌아왔다. 이튿날 설숭이 사신을 시켜 금합자를 돌려보내니 전승사는 자기의 음모가 이미 탄로 난 것을 알고 두려워하여 편지를 보내 사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