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사(禪源寺)에서 출가하여 자오국사(慈悟國師)의 제자가 되었다. 19세에승과를 보아 선종 계열의 가장 높은 시험에 해당하는 상상과(上上科)에 올랐으나, 명예나 문자를 탐구하는 것보다는 도를 닦아 얻는 과보(果報)를 중시하여 각지를 다니면서 도를 구하다가 원나라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몽산덕이의 제자인 철산소경(鐵山紹覆)을 만나 초빙하여 함께 귀국하고 3년간 스승으로 모셨다. 충감은 철산소경을 직접 초빙하였을 만큼 몽산의 선 수행과 선에 대한 가르침을 따르는 몽산선풍(禪風)에 적극적이었다. 몽산선풍은 이 시기 불교계의 중요한 선풍으로 성행하였으며 고려 선종계는 몽산덕이와 철산소경 등과의 교류를 통해 송대 선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철산소경이 귀국한 후 충감은용천사(龍泉寺)에서 주석(駐錫)하면서 선문청규(禪門淸規)를 실행하였다. 이후 그는 15년 간 선원사의 주지로 지냈다.
1336년에는충숙왕의 명을 받아 보광사(普光寺)로 들어갔으며 4년 뒤입적하게 된다.
보광선사 비문은카지노 게임 종류C2E0;카지노 게임에 수록되어 있고 해당 비는 현재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광사지에서는 14세기 말에 해당되는 복발형 목제 사리병(舍利甁)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라마 불교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인근 공주 마독사 오층석탑도 라마 불교 계통의 석탑이다. 부여와 공주 지역에 라마 불교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이 확인되는 것을원명국사 충감의 선풍의 영향으로 이해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