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무안 출신. 가야금산조의 명인인 태홍(太弘)의 아버지이며 판소리명창인 남중(南中)의 작은아버지이다. 이날치(李捺致)로부터 판소리를 배워 명창이 되었고 서편제소리를 하였는데 계면조를 주장하였다.
풍채도 좋고 학식도 있고 판소리도 잘하여 귀재라는 말을 들었다. 1900년에 상경하여 광무대협률사(光武臺協律社)의 공연에 참가하여 「춘향가」중 옥중가를 잘 불러 이름을 떨쳤다. 특히, 창극을 창안하여 김창환(金昌煥)과 함께 원각사(圓覺社) 창극운동에 주역을 담당하였다.
「심청가」및「춘향가」를 창극화하였고, 최초의 본격적인 창극으로 알려진 「최병두타령」을 창극화하여 인기를 끌었다.
후에 김창환협률사(金昌煥協律社)에 참가하였고 창극 「춘향가」에는 판소리 「춘향가」에 없는 ‘어사(御史)와 초동(樵童)’을 창작하였고, 「변강쇠타령」도 창극화하여 공연하였다. 1912년광주협률사(光州協律社)가 창립되자 「춘향가」을 연출, 지도하였다.
말년에는 향리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춘향가」·「적벽가」를 잘하였고, 특히 「적벽가」에 뛰어났다. 그의 문하에서 전일도(全一道)·박종원(朴宗元)·신용주(申用柱)와 같은 명창이 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