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평(季平), 호는 내원(萊園). 종교계에서는 김준(金準)으로 쓴다. 서울 출생.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창희(昌熙)의 넷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직각(直閣)을 지낸 이명기(李命棋)의 딸이다.
1902년 대한의학교를 제1기로 졸업하고 육군부위로 임관되었으며, 1903년에 대한의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그 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할 때까지 군의무 계통에 종사하면서 정3품 통정대부 육군참령삼등 군의장으로 승진하였다.
경술국치 후 대종교를 신봉하여 1911년 지교(知敎)로 특별임명되어 배천지사(白川支司) 전사(典事)로 3년간 시무하였고, 1914년에는 상교(尙敎)가 되었다.
특히, 1917년 총본사가 동만주 화룡현 삼도구(東滿洲和龍縣三道溝)로 이전되자 맏형인 제2대 교주 교헌(敎獻 : 茂園宗師)을 따라서 만주로 건너가 선교에 힘쓰는 한편, 현지의 거류동포를 위한 의료사업에도 진력하였다. 1938년 정교(正敎)로 승진됨과 동시에 대형(大兄)의 호를 받았다.
1946년 1월서울에서 남도본사(南道本司)를 재건하여 전리(典理)가 되었고, 총본사가 만주로부터 환국하자 초대 전리가 되었으며, 도사교위리(都司敎委理 : 교주권한대행)가 되었다.
그 뒤 원로원장을 거쳐 1958년 사교(司敎)로 올라감과 동시에 도형(道兄)의 호를 받았다. 1962년 4월 교의회에서 제5대 총전교(總典敎 : 교주)로 공선되어 2년간 시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