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英譯) 복음서 비밀 독서회의 일원인 바비도는 이단을 숙청하는 순회 재판소와 다른 언어로의 성서 번역을 금지한 로마 교황청에 대해 분노한다. 폭압을 이기지 못해 신앙의 맹세를 어기는 지도자들을 떠올리는 한편 라틴어를 알지 못해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된 복음을 읽는 것이 사형을 받을 만큼 중죄인지 회의한다. 사형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바비도는 양심에 따라 살 것을 결심하면서 벽에 걸린 어느 귀족의 옷을 던지고 찢는다.
재판정에서 바비도는 회개를 강요하는 사제에게 오히려 신앙의 양심을 되물으면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마차에서 내려 사형장으로 향하는 바비도에게 사람들의 욕설과 돌멩이가 날아온다. 헨리 태자가 바비도에게 사형을 피할 것을 권유하지만 바비도는 헨리 왕가의 불의를 비난한다. 순교를 선택한 바비도를 보며 헨리 태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심이라는 것은 비겁한 놈들의 겉치장이요, 정의는 권력의 버섯인 줄로만 알았더니 그것들이 진짜로 존재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바비도는 실존 인물이다. 소설 서두에 “바비도는 1410년 이단으로 지목되어 분형(焚刑)을 받은 재봉직공이다. 당시의 왕은 헨리4세. 태자는 헨리, 후일의 헨리5세다.”라고 시대적 배경이 명시되어 있다.
헨리 태자의 마지막 말에 등장하는 ‘양심’과 ‘정의’를 통해 이 소설이 단순히 15세기 영국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재현에 그친 것이 아니며 실은 당대 코인 카지노 사이트 사회에 대한 우회적 비판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바비도」는 교회의 권위와 국왕의 명령에 맞서 스스로 죽음을 결단한 순교자를 중심으로 인간 존재의 실존적 자유를 형상화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전후 사회 · 문화적 혼란, 독재 정권의 억압과 부패를 고발한 소설로서도 의미 있다.
「바비도」를 비롯해 「제우쓰의 자살」, 「오분간」의 경우처럼 서구 신화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우화소설은 김성한의 주된 창작 경향은 아니었다. 소설가곽학송은 이 시기의 김성한 소설을 예외적 경향으로 간주하며 ‘왜 하필 창작의 소재를 태서의 신화에서 구했을까?’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1955년부터『사상계』편집 주간을 맡은 김성한은 이 잡지의 기반인 서북계 월남 지식인 그룹과 그들의 기독교 사상으로부터 무관할 수 없었다. 세 편의 우화소설은 고대 그리스(「제우쓰의 자살」), 중세 유럽(「바비도」), 제3차 세계 대전(「오분간」)처럼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모두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억압과 자유, 신앙과 지성을 쟁점화하는 가운데 신과 인간 어디에서도 해답을 구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안을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