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기의 출판은 관(官)이 주도했지만, 중기로 접어들며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경제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인 서울·전주·나주·태인·안성·대구 등에서 민간 업자에 의한 간행이 이루어졌다. 목판에 새겨 인쇄하는 등의 방식이었기에 대량 생산과 판매를 통한 이윤 추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완업 카지노은 여러 지역 가운데 특히 전주에서 출판한업 카지노을 부르는 말로, 그 지역을 전라북도로 확장하여 이해하기도 한다.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는 호남의 모든 물산이 모여드는 지역이었고, 이곳에서 한지 생산, 시장 유통, 교통 발달 등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완업 카지노 출현의 배경이 조성되었다. 전주 지방은 한지의 생산지로, 수공업자 집단이 형성되어 있어 각수(刻手)를 구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고, 노령산맥의 지맥을 뒤에 두고 있어 판재의 보급도 원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전주 지역의 경우 물자가 풍성하고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한 덕분에, 소작하던 농민들은 호남평야를 배경으로 경제적 안정을 얻었고, 상업 자본의 유입에 따라 부상(富商)이 일어나기도 했다. 점차 여유를 갖추게 된 서민층 안에서 교양을 높이고,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얻으며, 오락적으로도 즐길 거리가 되는 독서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서민의 취향에 영합해 나타난 출판물이 완판방각본(完板坊刻本)이다. 사대부층을 위한 교양서나 문집류를 간행했던, 앞선 비방각본류(非坊刻本類)와 비교하면, 서민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면서, 영리를 추구하는 상업적인 출간물이었다는 의미가 있다. 비교적 이른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725년에 전라도 나주에서 한문본『구운몽』이 방각본으로 출판되고, 18세기 후반업 카지노 19세기 중엽 전라북도 태인 지역업 카지노 손기조(孫基祖) · 전이채(田以采) · 박치유(朴致維) 등 아전 출신의 인사들이 방각본을 다수 펴낸 것도 이러한 배경하에 가능했다.
현재 확인된 완업 카지노 방각 업소는 전주의 완남(完南), 완서(完西), 완북(完北), 서계서포(西溪書鋪), 다가서포(多佳書鋪), 칠서방(七書房), 양책방(梁冊坊), 완흥사서포(完興社書鋪) 등인데, 대부분 상품 교역이 활발했던 전주의 남부시장 인근 지역이다. 완업 카지노 간기에 적힌 ‘완서’, ‘완남’ 등이 방위를 나타내는 명칭이라는 사실은경업 카지노간기가 주로 지명을 사용한 것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또, 완업 카지노『조웅전(趙雄傳)』의 경우, 다른 지역의 방각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녁남 각슈의 박이력, 셔봉운”처럼 판을 새긴 각수의 이름이 보이기도 한다. 완업 카지노은 서민 취향의 도서와 양반 취향의 도서로 나뉘는데, 서민 취향의 출판은 서계 · 다가 · 양책방 등에서 담당했고, 양반 취향의 출판은 칠서방에서 담당하였다. 이들 방각본 간행 서포들은 주로 상공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완남과 완서에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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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세기 말로, 경업 카지노의 전성기가 19세기 중반인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1900년대 이후, 대량 생산을 위한 분업과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전주의 가내 수공업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가내 수공업의 하나인 목판 인쇄 출판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완판 방각본이 한창 판매되던 1900년대 초에 이미 서울에서는 활자본신업 카지노과 딱지본 고소설이 출판되었다. 신소설은 양지에 활자로 인쇄한 책이어서 목판에 한지를 사용하던 완업 카지노과는 비용 면에서 차이가 컸다. 실제로 1920년대에 필경으로 인쇄한 책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1940년대~1950년대에 전주에서도 노루지에 석판으로 인쇄한 석업 카지노이 유행하였었다. 이 석업 카지노들은 다시 주문에 의해 생산하는 사간본의 성격을 띄었다. 완업 카지노은 양책방(梁冊坊)이 아동 교육용 도서를 출판하는 1937년까지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이러한 시대 변화 및 기술의 발달에 따라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