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2월 6일 ‘국립영화촬영소’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북한 최대의 영화제작소로 초기에는 극영화보다 주로 기록영화 제작에 치중하였으며, 기록영화촬영소가 분리된 1957년경부터 극영화 제작만 전담하게 되었다.
1955년 6·25전쟁으로 파괴되었던 건물과 촬영시설들을 복구하였는데 이 복구공사를 통해 촬영용 스테이지의 확장과 스크린 프로세스 신축공사에 착수, 1957년 근대적 기술설비와 일부 제작시설 및 관리시설을 확장하였다.
총부지면적 100만㎡, 연건축면적 10만㎡ 규모로 평양시 형제산구역 중당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설로는 실내촬영장을 비롯해 편집실 · 음악실 · 연습실 · 야외촬영소 등과 배우양성소가 있다.
야외촬영소에는 반영구적인 조선거리 · 일본거리 · 중국거리 · 서양거리 · 농촌마을 및 남한의 서울 · 광주거리 세트가 설치되어 있는데, 특히 실내외 촬영장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초기부터 김일성(金日成) 우상물 제작의 총본산 역할을 해오고 있는데, 최초의 극영화 ≪내 고향≫(1949년)을 비롯해 ≪정방공≫ · ≪누리에 붙는 불≫ · ≪분계선 마을에서≫ · ≪조선의 별≫ · ≪민족의 태양≫ · ≪유격대의 5형제≫ 등과 1991년부터 시리즈물로 제작하고 있는 ≪민족과 운명≫ 등이 이 곳에서 제작된 대표작들이다.
1972년 2월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고, 촬영소 설립 40주년인 1987년 2월에는 김일성 훈장을 수상한 바 있으며, 최고책임자인 총장직은 1996년 1월 현재 백민(白民)이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