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은 인조대에 지어져《보태평》에 추가된 곡으로, 《보태평》이 세종 29년(1447)경에 처음 창제되었을 때와 세조 10년(1464)에종묘제례악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는 없었던 곡이다. 인조대에 선조의 광국중흥(光國中興)을 찬미하는 악장이 필요하다는 카지노 뽀찌이 제기되어 〈중광〉이 만들어졌다.
영조 35년(1759)에 편찬된『대악후보』권2의 ‘시용보태평보(時用保太平譜)’를 보면 제9번째 곡으로 〈중광〉이 수록되어 있는데, 새로 지은 악장에〈역성〉의 선율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본래 제8번째 곡이었던〈용광〉과 제9번째 곡이었던〈정명〉이 한 곡으로 합쳐져〈용광정명〉이 되어 《보태평》 제8번째 곡으로 수록되었다. 후대로 전승되면서 리듬과 일부 간음(間音)에 변화가 생겼으며 현재 종묘제례의 초헌에서 《보태평》의 제9번째 곡으로 연주되면서 전승이 이어지고 있다.
『대악후보』 권2에 전하는 〈중광〉의 노랫말은 4언 1구, 8구로 되어 있다. 매 1구가 16정간 1행을 차지하여 16정간 8행의 길이로 되어 있으며, 매 구의 끝부분에 규칙적으로 박(拍)이 한 번씩 들어간다. 악조는 황종궁 평조, 즉 황종, 태주, 중려, 임종, 남려, 5음음계로 되어 있다. 오늘날 〈중광〉은 박자가 일정하지 않으며 2구마다 한 번씩 박을 친다.
노랫말은 선조가 선계에 대한 명나라 문헌의 오류를 바로잡고 왜구를 물리쳐 중흥의 빛나는 일을 이루었다는 내용이다.
오황선조(於皇宣祖) 아아 위대하옵신 선조께옵서,
준덕중광(峻德重光) 높은 덕이 거듭 빛나시도다.
격천소무(格天昭誣) 천자께 통달하사 무함을 밝히시어,
정아종방(正我宗祊) 우리 종묘의 종계를 시정하셨으며
항의제흉(抗義除凶) 의를 들어 간흉을 제거 하시어
전아봉강(奠我封疆) 우리의 강토를 진정하시도다.
수리계후(受釐啓後) 복을 받아 후손에게 열어 주시니
유구치창(悠久熾昌) 유구토록 성창함이 빛나리로다.
(출처: 장사훈, 『최신 국악총론』, 세광음악출판사, 1985)
조선 전기에 제정된 종묘제례악이 조선 후기로 이어지면서 당시 사람들의 이해와 필요에 맞게 변모되는 과정을 〈중광〉의 첨입을 통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