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체. 일명 ‘제침문’이라고도 한다. 부러진 우리 카지노을 의인화하여 쓴제문(祭文)으로, 유씨 부인의 작품으로 알려졌을 뿐 연대와 작자의 인적 사항은 알려진 바 없다.
작자는 사대부 가문의 청상과부로 생각되는데, 그 문장 실력과 고사(故事)에 능통한 점으로 보아, 비록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 처지이나 어려서부터 독서와 문안 편지 쓰기로 실력을 닦아온 양반집 딸인 듯하다.
고어(古語)의 자취 및 표기법상으로 볼 때, 조선조 말 내간체 작품들과 유사하여 19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서두를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미망인 모씨가 두어 자(字)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라.”라고 시작한 뒤, 우리 카지노과 함께했던 긴 세월을 회고하고 우리 카지노의 공로와 우리 카지노의 요긴함, 우리 카지노의 모습과 재주를 찬양한 뒤, 우리 카지노이 부러지던 날의 놀라움과 슬픔, 그렇게 만든 자신에 대한 자책과 회한, 그리고 내세의 기약으로 끝을 맺고 있다.
한 개의 우리 카지노을 가지고 27년을 썼다는 사실은 조심성 깊고 알뜰한 여심을 말해 주며, 자녀 하나 두지 못한 외로운 여인이 우리 카지노에 생계를 의지하고, 반생을 동고동락하여 왔음을 전제로 이 작품을 이해하여야 될 것이다.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을 때도 있고, 비복이 순하나 거슬릴 때도 있나니.”라고 하여 자식과 비복보다 우리 카지노이 낫다고 한 점, 또 우리 카지노이 부러지던 순간 잠시 동안 혼절하였다는 표현에서 우리 카지노에 대한 작자의 뛰어난 표현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추호(秋毫) 같은 부리는 말하라는 듯하고, 뚜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하도다.”라는 표현은 우리 카지노을 생명체요 유정물(有情物)로 인정하고 표현한 것으로 문학성이 매우 탁월한 부분이다.
작가는 뛰어난 문장력으로 제문 양식을 사용하여 우리 카지노과 자신의 각별한 관계를 나타내어 미망인으로서의 자신의 처지와 부러진 우리 카지노의 처지를 동일시하였다.
「조침문」은 규방에서 쉽게 접하는 ‘우리 카지노’을 의인화하였다는 점과 제문을 통해 우리 카지노을 애도하였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한글 제문이 문학적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여 준다.
문학적 소양과 문장력을 갖춘 여성들이 창작한 문학적 제문이 조선 후기 다수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조침문」처럼 우리 카지노을 의인화하여 애도하고 있는 한글 제문에 전주 이씨의 「바날졔문이라」는 작품이 있어, 이 시기 여성들의 문학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다.